사랑하는 가족에게 (Canadian Edition — Korean Translation)

Letters4BlackLives-Canada
Letters for Black Lives
6 min readJun 18, 2020

--

사랑하는 가족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최근 미네소타에서 백인 경찰관이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남성을 무려 9분간 무릎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시키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그의 절규를 무시한 채 강제진압을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 두 명이 합류하여 플로이드가 전혀 움직일 수 없도록 무력으로 제압했고, 함께 현장에 있던 동양계 경찰관은 그 상황을 방관할 뿐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원주민과 흑인들은 이와 비슷한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는 반 흑인 반 원주민 여성 레지스 코친스키-파퀘트가 경찰의 불찰로 인해 베란다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6월에는 원주민 여성 샨텔 무어가 뉴브런스윅 경찰 총격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디안드레 캠벨, 아이샤 헛선, 제이슨 콜린스, 저메인 카비, 아드비 허시, 앤드류 로쿠, 쟌 피에르 보니와 그 외에 많은 흑인과 원주민들은 수 십년간 캐나다 경찰의 의해 사망했습니다.

비록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원주민과 흑인들을 살해한 경찰들은 대부분 아무런 징계조차 받고 있지 않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억울한 피해자들이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캐나다에서는 미국과 다르게 인종차별이 거의 없다고 자신만만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대중 언론만 보면 반흑인주의는 마치 미국만의 문제처럼 보여 위안을 느끼실 수 있겠지만, 저희의 경험만으로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소수자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비롯한 많은 소수자들은 캐나다 사회에서 차별과 불의에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궜는데, 왜 흑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나?”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정의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함께 발전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평상시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위협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집을 나설 때 마다 “오늘은 무사히 돌아올수 있을까?” 라는 생각 조차 안합니다. 도로에서 경찰이 우리를 멈춰 세우면 체포 혹은 살인을 당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없습니다. 이 땅의 원래 주인들은 원주민들이지만 저희는 그들의 땅에서 그들보다 더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흑인과 원주민들의 경험은 우리들의 경험과 다릅니다.

많은분들이 아시다시피 저희가 현재 살고있는 대륙은 과거 유럽인들의 식민지였습니다.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땅과 자원을 빼앗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강제로 끌고 와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원주민과 흑인들을 학대하고 착취를 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흑인 노예제도와 원주민들과의 불공평한 조약합의 이외에도 그들이 평범한 삶을 살지 못 하게 했습니다. 법적으로 투표를 막고 평등한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했으며, 재산이나 사업을 소유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흑인과 원주민들은 오늘날까지도 불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들은 아직까지도 억압 당하고 있습니다.

원주민과 흑인들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권리들은 그들이 경찰에 의해 희생당함으로써 얻게 된 결과물입니다.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오랫동안 인종차별에 대항하며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적 변화를 지지하고 이끌어왔습니다. 서로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불공평한 제도 아래에서도 흑인 인권 운동가들은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해 오랫동안 싸움을 해왔습니다. 또한 원주민들은 항상 저희를 응원하며 친절을 배풀었습니다.

물론 상황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사회체계는 여전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권을 위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수 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원주민들과 흑인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며, 심지어 살해도 당하고 있습니다.

대중매체들에서 약탈과 재산 피해에 대한 보도를 접할 때, 두렵고 불안하신 건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1992년 4.29 LA 사태 당시 한인 사회가 겪었던 피해와 고통이 다시 떠오르실 수도 있고, “한국처럼 평화롭게 촛불시위를 하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폭력성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는 대다수의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찰들이 시위도중 시민들 상대로 무자비하게 고무탄과 최루탄 난발하고 폭행을 가하기 때문에 평화롭던 시위도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겪으신 부모님 세대야말로 저희 세대보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시위대의 마음을 더 공감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한국도 수많은 운동과 항쟁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며, 지속되는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시위한 대중은 결국 오늘의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우리 가족의 생명보다 물질적 피해를 더 중요하게 여기면 분노로 가득 차지 않으시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으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시위를 하게 되었겠습니까? 몇 세대에 걸쳐 투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인종적 폭력과 억압이 여태까지 지속되고 있다면, 이러한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한다는게 얼마나 지치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인해 저는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과 원주민들의 주권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지지한다는 것은 제 가족을 포함한 한인 커뮤니티에서 흑인과 원주민들을 폄하하고 증오하는 (반(反)-흑인주의적인 혹은 반-원주민주의적인)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침묵으로 인해 더 많은 생명이 희생되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이 상황에 관해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부모들과 자녀들의 분노, 슬픔, 좌절감을 헤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 또한 제 안에 잠재 되어있던 편견을 되돌아보게 되며 이 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관련 단체에 기부하며 시위에 참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동안 잘 모르고 있던 흑인과 원주민들을 향한 차별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책과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편지를 친구분들께도 공유해서 더욱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들을 위해 험한 여정을 통해 캐나다로 이주하셨고, 결코 이민자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이 나라에서 수십 년간 견디신것에 대하여 무척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가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도록 편견이 가득한 이 땅에서 고생하셨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우리가 겪은 고생들을 생각하면 흑인과 원주민들을 연대하며 함께 이 투쟁을 싸워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원주민과 흑인들이 안전하지 않다면 저희 또한 안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처한 위기를 모른척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이 미래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희망을 담아, 자녀들 올림

--

--